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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 만에 무죄' 최말자 할머니
20대 시절 최말자 할머니(왼쪽 사진)의 ‘젊은 날의 한 컷’이 그의 자택 한 편에 자리하고 있다. 꽃다운 청춘은 어느덧 세월이 흘러 여든이 됐다. 김민정 기자
1964년 5월 6일, 도려내고 싶은 ‘그날’이다. 당시 18세였던 최말자는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 노모(당시 21세)씨에게 저항하다 그의 혀를 깨물어 절단했다. 성폭력 범죄 피해자로서 자신을 지키는 과정에서 이뤄진 행위였지만, 이 일로 할머니는 옥고를 치르고
대박TV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을 비운의 인물로 가둬 두지 않고, 끝내 죄인의 꼬리표를 떼어버렸다.
지난 10일 부산지방법원 형사5부는 최말자(79) 할머니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재심으로 피해자 정당방위가 인정된 첫 사례다. 이날 오후 부산시 연제구의 한 횟집에서는 할머니의 재심 전 과정을 함께한 변호인과 여성
교보KTB스팩 주식 단체, 지인이 모여 기쁨을 나누는 조촐한 저녁 자리가 있었다. 식당 밖에서 기자를 만나자마자 말자 할머니가 건넨 첫마디는 뜻밖이었다.
“요새는 와 무죄 ‘땅·땅·땅’ 그걸 안 하노.”
■ 법봉 소리도, 재판부 사과도 없었다
「 무죄까지 오는 데 내 삶 다 쏟아부어 검사들, 그놈 책임지라며 악랄했지
주식실시간시세 육십 넘어 방송대서 처음 인권 배워 」
1965년 1월, 그는 중상해로 기소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때 그 법봉 소리가 가슴의 응어리로 남아 있다”고 했다. ‘땅·땅·땅’ 유죄를 무죄로 바로잡는 소리로 할머니는 오랜 억울함을 상징적으로 씻어내고픈 마음이었다. (※그 법봉은 이듬해인 1966년 사라졌다. 권위적
청개구리투자클럽 이고 경직된 사법부에서 벗어나겠다는 취지에서다.)
10일 선고공판에서는 법봉 소리도, 재판부의 사과도 없었다. 최종 선고까지 불과 1분 남짓 걸렸다. 61년 세월을 담기엔 턱없이 짧았다.
“무죄까지 오는 데 내 삶을 다 쏟아부은기라. 만감이 교차하지. 내 인생은 무엇이었나…”
1964년 5월의 ‘그
시세분출 일’과 뒤틀린 판결로 인한 삶의 무게는 무거웠다. 그러나 긴 세월 굽히지 않았고, ‘살아냄’으로써 정의를 몸소 증명해 보였다. 그의 애틋한 사연과 험난한 투쟁의 시간을 옮기고자 한 이유다.
지난 7월 23일 검찰의 무죄 구형 이후 부산시 사상구 할머니 자택에서 만나 나눈 얘기, 지난 10일 최종 판결 후 식당 앞에서 말자 할머니가 건넨 소회 등 중앙일보와의 만남이 토대가 됐다. 할머니 곁에서 지난 수년간 싸움을 묵묵히 함께해 준 조력자 윤향희(56)씨의 전언도 더한다.
지난 10일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 최종 선고 후 엄지를 치켜세우며 기뻐하고 있는 모습. 송봉근 기자
무죄 선고 후 일주일, 할머니에게 축하 인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의 재심 여정에 힘이 된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13학번 동기들이 축하 파티를 열어줬다. 배움에 목말랐던 말자 할머니는 63세 되던 2009년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2013년 방송대에 입학, 2019년 졸업했다.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이 축하 화환을 보냈고, 직접 통화하고 싶다는 의사도 내비쳤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가장 듣고 싶은 축하 인사는 따로 있다. 들을 수 없는 목소리다. 끝내 딸의 ‘무죄’를 듣지 못하고 20여 년 전 세상을 떠난 말자 할머니의 부모님이다.
Q :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어떤 얘기를 건네실까요. A : “부모 마음을 어찌 말로 다 하겠어요. 내가 1남4녀 중 셋째 딸이라. 혼자 살겠다 발버둥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안쓰러웠던지 엄마는 언니, 동생이 가끔 쥐여주는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다 나를 줬어요. 엄마 임종 때 머리맡에 있는데 엄마의 양쪽 눈꺼풀이 살짝 벌어졌더라고. 그래서 얘기했지. ‘엄마 이제 다 잊어뿌고 편히 가세요.’ 그러면서 내가 눈을 감겨 드렸어.”
Q : 투박했던 아버지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로 딸을 지켰다. A : “당시 아버지가 논 한 구역을 팔아 합의했어. ‘내 죄가 없는데 왜 합의하느냐, 돈 10원도 주지 마세요’라고 했죠. 합의하면 내가 잘못한 걸 인정하는 거니까. 아버지 마음은 그게 아니었나 봐. 검사가 아버지한테 ‘딸 합의 안 하면 평생 교도소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나 봐. 자식을 어찌 평생 감옥살이 시키겠나. 논 한 구역을 팔아 합의했답디다. 아버지가 손으로 하나하나 이룬 재산이었는데….” 검찰의 고압적 신문은 18세 소녀 말자가 감당하기에 벅찼다. Q : 당시 검찰 수사는 어떠했나요. A : “독방에 가둬 두고 구속 사유나 변호인 선임권, 진술 거부권 뭐 아무런 설명도 없었어. 검사들이 나한테 얼마나 악랄했는지, 의자에 구둣발 얹어 가지고 ‘이× 네가 남자를 불구로 만들어 놨으면 책임져야 할 거 아이가’ ‘그 사람(노씨)한테 시집 가라. 안 갈 거면 돈으로 합의하든지’라고 했지.” Q : 긴 세월 고통, 부당함을 바로잡기로 결심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A : “육십 넘어 방송대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때 백영경 교수님의 『성, 사랑, 사회』 동영상 강의를 수십 번 돌려봤어요. 일평생 법이란 걸 제대로 배워봤습니까. 자신의 인권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교수님이 가슴에 와닿게 설명을 너무 잘해줬어. 여성의 삶과 역사에 관해 졸업 논문을 써야 했어요. ‘내가 걸어온 길, 앞으로 걸어갈 길’이란 주제가 마음에 와닿더라고. 그 사건을 ‘걸어온 길’에 안 넣을 수가 없잖아요. 이제 풀어놓을 때가 됐다고 생각했지.” ■ 나와라, 나오면 혼자가 아니다「 연이은 재심 기각에 이 6개 빠져 더 잘 먹고 운동하며 기다림과 싸워 나 같은 일 겪는 사람 없게 할 것 」 노트북을 열고 한 자 한 자 글로 썼지만,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 막막했다. 말자 할머니는 윤향희씨를 떠올렸다. 늦은 공부가 버거워 헤맬 때 내 일인 양 알려준 딸 같은 동기 동창이다. Q : 할머니가 쓴 글을 보고 윤향희씨는 처음 어떤 말을 건넸나요. A : “기가 찬 얘기들이 나오니까 우리 (동문) 회장님(말자 할머니는 윤씨를 이렇게 부른다)이 처음엔 아무 말도 못 했어. 긴가민가했을 거예요. 그러곤 둘이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어. ‘어떻게 이 시간까지 살아왔느냐’고.” 윤씨는 2013년부터 할머니를 옆에서 봐왔다. 쉽사리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분이 아니었다. 허황된 소리를 할 사람은 더욱 아니었다. 할머니의 고백이 진실임을 깨달았다. 윤씨와 말자 할머니는 힘이 될 여러 기관과 시민단체를 물색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눈에 띄었다. 2018년 12월, ‘그 일’이 있고 54년 만에 말자 할머니의 투쟁이 시작됐다. 2년여 상담이 이어지고 2020년 5월 6일, 말자 할머니는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듬해 2월과 9월에 부산지방법원·부산고등법원은 연이어 기각 결정을 내렸다. “시대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 “‘검사가 불법으로 가두고 자백을 강요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할머니는 대법원에 재항고(2021년 9월)했다. Q : 가장 힘에 부쳤을 때는 언제인가요. A : “재항고하고 2년이 다 돼 가는데 아무 소식이 없었어. 2023년 5월에 대법원 앞에서 재심을 개시해 달라고 1인 시위를 시작했어요.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앞니 6개가 왕창 나갔어. 안 되는구나 싶었지. 자꾸 힘이 부치니까. 주변 지인에게 부탁까지 했어요. ‘만약 내가 이걸(재심) 못 보고 가더라도 마무리를 꼭 해달라고’. 주변 사람들이 ‘할머니가 쓰러지면 마무리 지을 수 없는 일’이라고 용기를 줬어.” 말자 할머니는 더 철저하게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에 매달렸다. 백양산도 일주일에 두어 번 올랐다. 몸의 기력이 떨어질 때면 귀찮아도 꼭 구포시장에 들러 낙지를 사와 손수 밥을 지어 먹었다. 그는 기다림과의 또 다른 싸움을 벌였다. 대법원은 3년 넘는 심리 끝에 지난해 12월 재심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파기하고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할머니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데 사실 조사 없이 청구를 기각하는 건 부당하다는 취지다. 할머니는 대법원의 파기환송문에 눈물을 쏟았다. 파기환송 이후 다시 7개월, 지난 7월 23일 재심 공판에서 검찰은 무죄를 구형했고 9월 10일 무죄 판단으로 긴 여정의 종지부를 찍었다. Q : 할머니의 꿈은 무엇인가요. A : “내 같은 일을 겪는 사람이 없게 해야지. 요즘도 성폭력이 곳곳에서 너무 많이 일어나. 피해를 보고도 선뜻 밖으로 나오질 못해. (사건이 공론화되면) 이중 삼중으로 피해를 보니까. 난 말해주고 싶어. ‘나와라, 나오면 혼자가 아니다. 가슴에 있는 한을 풀고 당당히 내 인권을 찾아라’하고. 내처럼 이리 인생을 허비하면 되겠습니꺼.” 10일 재심 최종 선고공판 현장에는 또 다른 성폭력 피해자도 자리해 있었다. “할머니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며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와 함께한 사람이다. 말자 할머니의 61년 굴곡진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부산=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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