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6월 삼풍 참사 현장에서 땅굴 시추용 군 장비를 동원한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중앙포토
“사건이 없는 것이 제일 좋지만, 공업화로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현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1995년 6월 30일 오전 청와대 본관 접견실. 김영삼 대통령은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에 대해 “우리나라는 언론의 자유가 지나치게 보장돼 있고 민주주의가 발달해 너무 많이 과장되게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처럼 말했다. 막심 칼로 코르만 바투아누 총리가 “(이홍구 국무총리로부터)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다고 들었다”며 건넨 위
바다이야기룰 로 서한에 감사 인사를 하던 중이었다. 서울 서초구 삼풍 백화점이 붕괴하면서 502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다친 이튿날이었다. 이날도 사고 수습이 한창이었다.
코르만 바누아투 총리 대통령 예방 요록에 따르면 김 대통령은 “세계에서 경제가 발전된 중요한 나라 치고 사건이 없는 나라가 없고, 경제가 발전하다 보면 사건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릴게임사이트추천 100% 완전한 나라는 없다”며 “미국에서도 사건이 많이 나고 있으며, 일본도 심각할 정도로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바 예외 없는 나라가 없다”고 말했다. 정상 간 대화에서 한국 지도자가 초대형 참사를 경제발전의 부산물로 표현하고 언론의 과장 보도를 언급한 것이다.
이런 내용은 외교부가 31일 공개한 2621권(37만쪽) 분량의 1995년
바다이야기비밀코드 외교문서에 포함됐다. 외교부는 생산된 지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는 매해 심사를 거쳐 비밀 해제 여부를 결정한다.
외교문서에 따르면 김 대통령은 해외 사례를 예로 들면서 한국 언론의 보도가 과하다는 점을 부각했다. “미국에서는 7분에 살인사건이 1건씩 발생하고 있고 일본에서도 몇 달 전에 옴진리교 사건과 관련해 경찰청 장관이 저격을 당했
알라딘릴게임 는데 아직 범인은 체포되지 않았다”며 “미국 언론들이 7분 만에 1건씩 발생하는 사건을 전부 다 보도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한국에서는 몇 달에 한 번씩 큰 사건이 발생하나 우리 언론들은 일단 발생했다 하면 엄청나게 과장 보도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코르만 총리는 “설명에 감사드린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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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31일 1995년 6월 30일 김영삼 대통령과 막심 칼로 코르만 바투아누 총리와의 접견 내용이 담긴 1995년 외교문서를 일반에 공개했다. 자료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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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30년 전 北과 조약 폐기…韓, 물밑작업도
러시아가 소련 시절 북한과 맺은 ‘우호 협력 및 상호 원조 조약’을 1995년 폐기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물밑 작업을 한 기록도 이날 공개됐다. 북한과 러시아는 1961년 김일성 북한 주석이 소련을 찾았을 때 상호 우호 조약을 맺었다. 공로명 당시 외무부 장관은 1995년 5월 알렉산드르 파노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과의 면담에서 자동 군사 개입 조항으로 읽히는 북·러 우호조약 1조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그해 6월 주러 한국 공사를 초치해 한국이 “조약 개폐 문제에 대해 간섭적 태도를 보인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결국 러시아는 그해 9월 북한에 조약을 폐기하겠다고 통보했다. 조약 폐기 직전 북한이 1995년 8월로 예정됐던 러시아 태평양함대 함정의 원산 방문 제의를 거절하자 러시아가 이를 “조약의 향배를 낙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지하게 해주는 측면”이라며 판단한 정황도 이날 공개된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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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권력승계 지연 두고 추측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사망 뒤 1년이 지나도록 공식적으로 권력 승계를 하지 않는 걸 두고 각국이 주시한 기록도 공개됐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5년 3월 한·독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이 당뇨병 내지 신장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10월까지 공식 승계가 이뤄지지 않으면 건강 이상이나 내부 권력투쟁 등을 의심해도 좋다는 중국 측 정보를 소개했다. 같은 해 1월 중국 랴오닝성 외사판공실 부주임도 “북한 공관원과 접촉해 들었다”며 건강 문제를 언급했다. 업무량으로 보아 직책 수행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관측을 거론하면서 2년 전 낙마 후유증 등을 이야기했다.
김일성의 사망으로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된 점도 언급됐다. 중국 외교부 아주국 조선처장은 1995년 2월 한국대사관 인사와 만나 “국가주석직을 공식 승계하게 될 경우 당장 남북정상회담을 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므로 이를 피하기 위한 측면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북한은 김정일이 삼년상을 치르며 주위의 간청에도 새 직책을 수락하지 않았다는 식의 선전을 해왔고, 김정일은 1997년 10월 노동당 최고 직책인 총비서에 추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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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中 주석 방한 시 대만 수교 검토” 으름장
한·중 수교 한 달여 뒤인 1992년 9월 29일 중국 베이징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왼쪽)과 회담하는 장쩌민 당시 중국 공산당 총서기 중앙포토
중국이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의 방한을 추진하자 북한이 반발한 정황도 외교문서에 담겼다. 1995년 6월 외무부가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로부터 청취한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 연구소 대표단은 그해 5월 북한에서 북한 외무성 산하 군축 및 평화문제연구소와의 회의에서 북·중 간 특수관계를 고려해 대만과의 관계를 처리해달라고 했다. 이에 북한 측은 “중국과 한국이 고위인사 교류를 하는데 북한은 왜 대만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없느냐”며 “만일 보도된 대로 올해 11월 장 주석이 한국을 방문한다면 대만과의 외교관계 수립까지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당시 주중 대사관 보고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이전 장 주석의 방한을 추진했다. 공산당 중앙 판공청 측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APEC회의 이후 방한을 내세웠는데, 한국 측은 장 주석의 방한이 이뤄지면 시점과 관계없이 북한의 불만은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강조했다. 결국 장 주석은 APEC 회의 전인 11월 13∼17일 한국을 찾았다.
이외에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이름을 바꾸려는 시도에 대해 주한 이란 대사가 1995년 12월 15일 이홍구 국무총리 이임 예방 자리에서 명칭 변경이 양국 우호 관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일도 공개된 외교문서에 포함됐다.
외교부는 지난해까지 32차례에 걸쳐 1948~1994년에 쓰인 문서 약 4만권(570만쪽)을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한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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